“서울은 경복궁 둘러보고 명동 같은데 가서 쇼핑하면 더이상 볼게 많지 않죠. 오사카 유니버셜 스튜디오, 상하이 디즈니랜드처럼 제대로 된 테마파크가 하나 쯤 있어야 하는 것 아닌가요?”
최근 기자를 만난 한 사모펀드(PEF) 운용사 관계자는 이처럼 말했다. 방한 외국인 관광객 수가 올 해 처음으로 연간 2000만 명을 넘어설 것으로 관측되는 가운데(현대경제연구원), 이들이 한국에서 즐길 거리가 많지 않다며 서울 근거리에 수준 높은 테마파크를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그는 “에버랜드는 접근성이 떨어지고 롯데월드는 규모의 한계가 있다”며 “서울역에서 4호선으로 25분만에 도착하는 과천 서울랜드를 제대로 개발하면 투자할 의향을 가진 곳들이 많을 것”이라고 말했다.
①외국인 관광객 2000만명…서울대공원 잠재력 주목
경기도 과천시에 위치한 서울대공원은 총 913만㎡ 대규모 부지를 보유하고 있다. 근린공원 면적이 약 667만㎡, 청계산 내 임야 면적이 약 246만㎡다. 오사카 유니버셜 스튜디오의 부지가 총 54만㎡라는 점을 고려하면 엄청난 규모다.
대공원은 서울랜드와 동·식물원, 국립 현대 미술관, 국립 과천 과학관, 캠핑장 등을 갖췄다. 단연 국내 최대 규모의 종합 테마파크지만 시설과 수준은 다소 낙후했다는 평가도 받는다.
전체 소유권은 서울시에 있으나 각 구역별 운영 주체는 다르다. 동·식물원은 서울시가, 국립현대미술관은 문화체육관광부가, 국립과천과학관은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운영한다. 놀이동산인 서울랜드는 주식회사 서울랜드(옛 한덕개발)가 1988년부터 지금까지 40년 가까이 운영해오고 있다.
㈜서울랜드는 한일시멘트의 지주사 한일홀딩스가 지분 85.67%를 갖고 있다. 서울시는 1984년 국내 첫 테마파크를 BTO(수익형민간투자사업) 방식으로 개발했는데, ㈜서울랜드가 20년 무상, 10년 유상으로 서울시와 30년 운영계약을 맺었다. 이후 ㈜서울랜드는 몇차례 계약을 연장하면서 이 놀이동산을 2027년 5월까지 운영할 예정이다.
②한일시멘트 자회사 ㈜서울랜드, 수년째 적자 운영
업계 안팎에서는 시멘트그룹이 서울랜드 운영을 맡는 것 보다 유흥과 위락시설, 문화·콘텐츠 등에 강점이 있는 기업에 운영권을 줘야 한다는 주장이 계속해서 나온다. ㈜서울랜드의 감사보고서에 따르면 이 회사는 2024년과 2023년 당기순손실을 각각 70억 원, 55억 원을 기록하는 등 수년째 적자 상태다.
운영 주체를 바꾸려는 시도는 과거에도 수 차례 있었다. 2004년 이명박 서울시장은 서울대공원 부지에 디즈니랜드를 유치한다는 계획을 세웠으나 ㈜서울랜드가 서울시에 소송을 걸어 승소하면서 일단락 됐다.
2014년 운영권 재입찰 당시엔 롯데나 이랜드 같은 대기업이 나설 것이란 관측도 있었다. 그러나 서울시가 운영 보장 기간을 단축해 입찰공고문을 내면서 실익이 없다고 판단한 기업들이 계획을 접었다. 카카오도 한때 테마파크 건설을 위한 임시 팀을 조직하고 서울랜드 운영권 입찰을 검토 했으나 비슷한 이유로 무산된 것으로 알려진다.
서울대공원을 세계적 수준의 테마파크로 건설해 관광 수입을 극대화하려면 전체 운영 주체인 서울시의 뒷받침도 필수라는 지적이 나온다. 입찰 심사를 투명하게 진행하고 운영권 보장 기간을 늘려 자본력을 갖춘 새로운 사업자가 등장할 수 있도록 길을 열어야 한다는 것이다.
③中·日에 경쟁력 밀려…베이징 유니버셜, 9조 투자유치
세계테마파크엔터테인먼트협회(TEA)에 따르면 2023년 전세계 1위 테마파크(입장객 수 기준)는 연간 1772만 명을 기록한 미국 플로리다의 디즈니월드였다. 아시아권에서는 유니버셜스튜디오 재팬이 1600만 명으로 1위(전세계 3위), 도쿄 디즈니랜드가 1510만 명으로 2위(전세계 4위), 상하이 디즈니랜드가 1400만 명으로 3위(전세계 5위) 등을 기록했다. 한국의 에버랜드와 롯데월드는 각각 588만 명과 519만 명으로 전세계 19위, 23위였다. 서울랜드는 순위에 들지 못했다.
중국이나 일본에 비해 국내 테마파크의 경쟁력이 없어 외국인 관광객 유치가 어렵다는 분석이다. 신세계프라퍼티가 경기도 화성에 대규모 테마파크를 짓는다는 계획을 갖고 있지만 역시 접근성이 떨어진다는 평가다. 2022년 강원도 춘천에 개장한 세계적 테마파크 레고랜드는 매년 적자폭을 늘려 지난해 약 300억 원의 당기순손실을 기록했다.
앞으로 국내외 기업의 참여를 유도하려면 서울랜드를 테마파크와 상업, 문화, 레저 복합단지 개발 기회로 포지셔닝해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대규모 투자를 유치할 수 있도록 개발 계획에 대한 자율성도 일부 보장해야 한다는 평가다.
2021년 개장한 베이징 유니버셜 스튜디오는 NBC유니버셜 산하 유니버셜 테마파크 & 리조트에 지분 30%를 주고 베이징 문화관광투자유한공사(지분 70%)와 공동 소유·운영하고 있다. 개발 당시 약 500억 위안(한화 약 9조 2000억 원)의 투자를 유치했다.
한 투자은행(IB) 업계 관계자는 “접근성과 부지 규모, 주변 환경 등을 고려하면 서울대공원과 서울랜드는 아시아의 다른 테마파크를 넘어설 입지와 환경을 갖췄다”면서 “전문성을 갖춘 기업이 나타나 한류 콘텐츠를 입히는 등 청사진을 제시한다면 대규모 투자 유치도 불가능해 보이지 않는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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