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력적인 저평가 밸류의 마지막 찬스’ ‘원금 보장 안정적 투자 구조’ ‘글로벌 빅테크의 지속적인 M&A 러브콜’.
벤처캐피털(VC)들이 금융기관이나 개인 자산가 등 잠재 투자자에게 건네는 투자 제안서를 들여다보면 과연 이게 벤처기업에 투자하는 펀드가 맞는지 의문이 든다. 투자를 권유하는 화려한 미사여구가 동원돼 금방 큰돈을 손에 쥐게 될 것이라는 기대가 샘솟는다. 한 편에 투자 위험 경고가 적혀 있긴 하나 강력한 마케팅 문구에 현혹되면 손실을 볼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은 좀처럼 들지 않는다.
이는 특정 벤처기업 한 곳에 약정액 전액을 투자하는 ‘프로젝트 벤처펀드’에 관한 것이다. 여러 벤처기업에 분산투자하는 ‘블라인드펀드’와는 구별된다. 벤처투자가 본래 ‘고위험·고수익’을 전제로 하지만 프로젝트펀드는 이를 넘어선 ‘초고위험·초고수익’에 가깝다. 벤처펀드의 투자 포트폴리오가 하나인 탓에 해당 기업에서 횡령이 터지거나 부도라도 난다면 투자금 보전은 불가능하다. 운이 좋으면 투자 원금을 5~10배까지도 불릴 수 있지만 삐끗하면 투자금 전액이 ‘제로(0)’가 될 수 있다는 얘기다.
더욱 우려되는 부분은 이러한 프로젝트펀드 주요 출자자 중 상당수가 벤처투자에 대한 전문성이 높지 않은 개인투자자들이라는 점이다. 프로젝트펀드 자금을 모집하는 곳들도 대부분 큰 ‘한 방’이 절실한 신생 VC인 경우가 많아 부실한 사후 관리 우려도 크다. 10년 이상 장기투자가 필수적인 블라인드펀드 대신 비교적 단기 성과를 노릴 수 있는 프로젝트펀드로 신생 VC와 개인 자금이 몰리고 있는 것이다.
고금리 여파로 벤처투자 시장이 얼어붙은 최근 몇 년간 피해 사례가 잇따랐다. 몸값이 수천억 원에 달했던 벤처기업 중 청산됐거나 회생 절차에 들어간 곳을 보면 여지없이 프로젝트펀드 자금이 투입돼 있었다. 투자 결과를 납득하지 못한 일부 개인투자자는 소송전을 벌이다 애먼 변호사비만 떠안기도 했다.
최근 기자와 만난 한 1세대 벤처캐피털리스트는 “프로젝트펀드는 벤처투자 생태계를 망친다”며 “금지해야 한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벤처투자의 본질은 포트폴리오 구성을 통해 위험을 분산하고 동시에 유망 벤처기업의 성장을 지원하는 데 있다. 그러나 프로젝트펀드는 ‘한 방’에 모든 것을 거는 구조다. 펀드의 개인 출자 비중을 제한하거나 투자자 보호 장치를 강화해 VC들의 진입 문턱을 높이는 제도적 보완이 필요하다. 그렇지 않다면 ‘한탕주의’식 자금 모집은 되풀이될 것이고 그 피해는 고스란히 개인투자자에게 돌아갈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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