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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산분리에 묶인 CVC…4년새 투자금 45% 급감했다

올 1~3분기 국내 투자 8664억
대·중견 직접투자액까지 합치면
4년 사이 투자액 60% 줄어

  • 심우일 기자
  • 2025-11-11 05:0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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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기업형 벤처캐피털(CVC)의 중소기업·스타트업 투자액이 최근 4년 새 반 토막 난 것으로 확인됐다. CJ·GS 같은 일반 지주회사의 CVC 설립 허용 이후에도 실적이 감소한 것인데 시장에서는 금산분리 규제를 풀어 산업자본이 벤처 투자에 적극 나설 수 있게 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서울경제신문이 스타트업 투자 정보 플랫폼 더브이씨의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올해 1~3분기 대·중견기업 CVC의 국내 스타트업·중기 투자액은 8664억 원으로 집계됐다. 지난해 같은 기간(8232억 원)과 비교하면 소폭 늘었지만 일반 지주회사의 CVC 설립 허용 직전인 2021년 1~3분기(1조 6002억 원)와 비교하면 무려 45.9%나 급감했다.

시장에서는 벤처 경기와 함께 금산분리 규제가 주원인이라는 얘기가 나온다. CVC 펀드의 외부 자금 비중을 40%로 묶고 있는 것이 대표적이다. 최준선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명예교수는 “미국만 해도 산업자본의 투자 활동에 거의 제한이 없다”며 “미국에 준하는 수준으로 규제를 완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韓 '20%룰' 묶여있을 때…엔비디아 CVC는 AI·양자컴에 투자




올해 3분기 엔비디아 산하 기업형 벤처캐피털(CVC)인 엔벤처스는 총 15건의 투자를 마무리했다. 9월 프랑스의 대표 인공지능(AI) 스타트업으로 꼽히는 미스트랄AI에 투자자로 참여한 것이 대표적이다. 당시 미스트랄AI가 받은 외부에서 받은 총투자금만 17억 유로(약 2조 8000억 원)다. 엔벤처스는 양자컴퓨팅 업체 프사이퀀텀과 로봇 스타트업 필드AI에도 자금을 투입했다.

미국 가상화폐거래소 코인베이스 산하의 CVC인 코인베이스벤처스도 올해 3분기에만 22건의 투자를 완료했다. 미쓰비시UFJ캐피털(16건), SMBC벤처캐피털(15건)을 비롯한 일본 금융사 계열 CVC도 10건이 넘는 투자를 집행했다.

해외와 달리 한국 CVC들은 스타트업 투자에서 부진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서울경제신문이 더브이씨의 자료를 분석한 결과 올해 1~9월 한국 대·중견기업이 직접 투자와 CVC를 통해 집행한 국내 중소기업·스타트업 투자액은 1조 997억 원이었다. 일반 지주회사의 CVC 설립이 허용됐던 2021년 2조 6851억 원이었던 것을 고려하면 59%나 하락했다. 투자 문호는 넓어졌는데 거꾸로 투자액은 줄었다.

CVC의 투자 건수도 2021년 773건에서 2022년 724건을 거쳐 2023년 465건, 지난해는 406건으로 감소세가 뚜렷하다. 투자 업계의 관계자는 “2021년 이후 금리 상승과 벤처기업 고평가 논란으로 투자액이 감소한 측면이 있다”면서도 “대·중견기업의 스타트업 투자가 부진한 것도 사실”이라고 설명했다.

국내 CVC의 투자 규모도 외국에 비해 작다. 시장조사 기관인 CB인사이트에 따르면 올해 1~9월 전 세계 CVC들의 건당 평균 투자액은 3570만 달러(약 520억 원) 수준이다. 반면 더브이씨 자료상 한국 CVC의 건당 투자액은 같은 기간 약 31억 원에 불과하다.

이는 국내 규제 때문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얘기다. 현행 공정거래법은 일반 지주회사 CVC의 총출자액 중 최대 40%까지만 외부 자금으로 조달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차입 규모는 자기자본의 2배로 제한된다. 해외 투자 비중도 총자산의 20%까지만 가능하다. 반면 미국은 은행·금융그룹에 대해 사모펀드 운용을 제한하지만 산업 자본을 겨냥해 출자·차입 한도를 두지 않고 있다. 일본 역시 금산분리 규제가 없다.

금융계에서는 국내 금산분리 규제가 강한 이유로 반기업 정서와 외환위기 트라우마를 꼽는다. 금산분리의 경우 1982년 산업자본이 은행 지분의 8%까지만 보유할 수 있도록 한 것을 시작으로 1994년 한도가 4%로 강화됐다. 외환위기 이후인 2000년 금융지주회사법이 제정되면서 이 같은 ‘은산분리’ 기조가 굳어졌다.

하지만 산업자본의 벤처 투자를 일반 금산분리와 같은 틀로 보면 안 된다는 조언이 나온다. 최준선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명예교수는 “CVC나 벤처 펀드는 투자를 위한 일종의 도관에 불과하다”며 “산업자본의 펀드나 CVC는 금융사에 대한 지배구조 문제를 다루는 일반 금산분리 규제와는 다른 틀에서 접근해야 한다는 뜻”이라고 강조했다.

금융계의 또 다른 관계자는 “순수 사모펀드 운용사보다 산업자본이 각 첨단산업에 대한 이해도가 더 높을 수밖에 없다”며 “산업자본이 펀드운용사(GP)로 참여할 수 있도록 제도를 풀면 대기업에 잠들어 있는 현금을 생산적 금융 분야에 유도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정치권에서도 비슷한 의견이 나오고 있다. 강준현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난달 28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정무위 종합감사에서 “산업 현장 경험이 많은 기업이 GP로 참여해서 장기적인 자본 조달과 함께 성장 노하우를 전수한다면 글로벌 기업을 육성할 수 있다고 본다”고 전했다.

글로벌 CVC 투자 규모는 회복세


글로벌 기업형 벤처캐피털(CVC)의 투자는 회복세다. CB인사이트에 따르면 올해 3분기 전 세계 CVC의 투자 규모는 204억 달러로 조사됐다. 원화로 보면 약 30조 원 수준으로 지난해 같은 분기(170억 달러)에 비해 20%나 성장한 것이다. 전체 글로벌 벤처 투자 규모도 지난해 3분기 594억 달러에서 올해 7~9월 956억 달러로 60.9% 성장했는데 CVC 역시 이와 비슷한 흐름을 보인 것으로 해석된다.

벤처 업계에서는 그동안 침체기를 이어갔던 벤처 투자 시장이 회복세를 보인 영향이 컸다는 분석이 나온다. 전 세계 CVC 투자액은 2021년 3분기 525억 달러를 정점으로 점차 하락세를 보여왔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각국 중앙은행의 금리 인상이 이어지던 2022년 3분기에는 1년 전보다 63%나 급감한 193억 달러까지 떨어졌다. 2023년 7~9월에는 141억 달러까지 떨어지기도 했다.

하지만 지난해 인공지능(AI) 스타트업 투자 열풍이 본격화하면서 CVC의 투자액이 반등세를 보이기 시작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로 지난해 3분기에는 투자액이 전년 동기 대비 20.6% 늘어난 170억 달러를 기록했다. 그 다음 분기(2024년 4분기)에는 239억 달러의 투자액이 모이면서 10개 분기 만에 200억 달러대를 회복했다.

다만 투자 건수는 내림세를 보이고 있다. 올해 3분기 CVC의 투자 건수는 764건으로 1년 전(860건)보다 11.2% 줄었다. 2021년 3분기(1498건)와 비교하면 절반 수준에 불과하다. 한 투자 업계 관계자는 “한국에서도 대형 AI 스타트업을 중심으로 벤처캐피털(VC)의 투자가 집중되고 있는데 전 세계적으로도 비슷한 양상이 나타나는 것으로 보인다”고 해석했다.

생산적 금융의 또다른 축 QIB…13년간 발행액은 6000억 그쳐


정부가 중소·중견기업의 자금 조달을 활성화한다는 취지로 도입한 적격기관투자가(QIB) 원화 회사채 발행 규모가 총 6000억 원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업계에서는 당국이 추진하는 생산적 금융의 확대를 위해서는 보험사가 보유한 QIB 채권을 대출이 아닌 유가증권으로 볼 수 있게 제도를 개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제도 도입 이후 이날 현재까지 발행된 원화 표시 QIB 채권 잔액은 총 6000억 원으로 집계됐다.

QIB는 중소·중견기업의 자금 조달을 도우려는 취지로 2012년 도입됐다. 금융기관과 펀드·연기금을 비롯한 QIB만 참여할 수 있는 대신 증권 신고서 공시 의무와 전매 제한 조치를 받지 않는 것이 특징이다.



하지만 QIB 채권 시장은 사실상 활성화하지 못하고 있다. 실제로 2020년과 2022년, 2024년 QIB 채권 발행액은 아예 0원이었다. 그나마 올해는 발행액이 2000억 원으로 늘었지만 이 역시 정책금융 기관의 지원 때문이라는 평가가 많다. 금융 당국은 올해 4월 회사채 발행액의 최대 80%를 신용보증기금이 지급보증하고 나머지는 한국산업은행이 인수하는 내용의 QIB 활성화 방안을 발표한 바 있다. 금융계의 한 관계자는 “QIB 회사채는 직접투자 시장에서 생산적 금융을 활성화할 수 있는 창구 중 하나”라며 “금융 당국과 정책금융 기관에서도 육성 노력을 기울이고 있지만 여전히 저조하다는 평가가 나오는 것이 사실”이라고 설명했다.

시장에서는 금융 규제가 QIB 채권 투자를 가로막는 이유 가운데 하나라는 진단이 나온다. 현재 QIB 채권은 보험업 감독 규정상 사모 사채로 분류된다. 이 경우 대출로 간주되기 때문에 QIB에 투자하는 보험사는 별도로 충당금을 쌓아야 한다. 업계에서는 2010년대 중후반부터 보험사들이 투자하는 QIB 채권을 유가증권으로 인정해줘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돼왔지만 현재까지도 관련 규제가 바뀌지 않았다. 금융계의 한 관계자는 “중소·벤처기업 입장에서는 직접 회사채를 발행하기보다는 은행을 통해 차입을 받는 것을 더 선호하려는 경향이 강하다”면서도 “보험사가 QIB 채권 시장에서 잠재적인 큰손인 만큼 QIB 채권을 유가증권으로 인정해주는 일부터 해볼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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