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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훈 "기술 가치는 시장서 증명…투자자 설득할 스토리 붙여야" [CEO&STORY]

■이동훈 코스닥협회장·켐트로스 대표
연구원 생활 13년만에 켐트로스 창업
검증·축적 등 연구자적 사고 경영 반영
혁신 기술 보유하고도 소통 방식 부족
제 가치 인정 못받는 기업 수없이 접해
기업 대변 역할 넘어 실질적 변화 유도
'코스닥 3000 시대' 여는 스피커 될 것

  • 장문항 기자
  • 2025-12-03 17:4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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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훈 코스닥협회장이 3일 서울 여의도 코스닥협회 사옥에서 서울경제신문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오승현 기자


“연구원 생활만 하다가 경영인이 되니 기술은 기술 그 자체로 존재 의의가 생기는 게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기술력은 고객이 이해할 수 있는 스토리가 붙고 시장에서 살아 숨 쉬어야만 비로소 빛을 발합니다.”

코스닥협회장인 이동훈 켐트로스 대표는 3일 서울경제신문과 만나 연구실에서 출발해 사업 현장을 거치고 이제는 코스닥 생태계를 대표하는 자리에 오르기까지 기술 기업에 대해 느낀 바를 이같이 설명했다. 그는 기술의 혁신성보다 ‘현실 속에서 어떤 문제를 해결하고, 어떤 맥락에서 쓰이느냐’가 더 중요한 핵심적인 가치라고 강조했다.

이 대표의 출발점은 ‘정통 연구자’였다. 고교 시절 은사였던 화학 교사의 영향으로 유기합성에 관심을 가졌고 대학·대학원에서는 자연물의 구조를 밝히고 합성하는 데 몰두했다. 실험실에서 신약 후보 구조를 직접 디자인하는 과정은 단순한 학문적 흥미를 넘어섰다. 인류의 생명을 연장하는 기술을 만든다는 사명감이 생겼고 그것은 그를 연구의 세계로 깊게 끌어당겼다.

하지만 외환위기 이후 회사의 신약 개발 프로젝트들이 연달아 중단되면서 그는 연구가 시장 논리 앞에서 얼마나 무력해질 수 있는지 처음 느꼈다. 이 대표는 “연구만 했던 사람이었기 때문에 사업적인 측면에서 현실 감각이 전혀 없었다”면서 “단순히 기술력만으로 사회에서 살아남기는 힘들겠다고 생각했다”고 회상했다.

연구실 밖 산업 현장은 더 차가웠다. 회사는 자체 생산 설비가 없어 외부 공장에 공정을 맡겨야 했고 이 과정에서 그는 기술의 완성도와 현장성이 전혀 다른 세계라는 사실을 재차 깨달았다. 당시 임대 공장 관계자들이 “연구소에서 만드는 신기술·신제품 중 90%는 사실상 부도수표”라고 한 말은 추후 실용성이라는 가치에 더욱 집중하도록 만들었다. 실험실에서 문제없이 구현되던 합성 조건이 현장에서는 장비·원료·환경 차이로 인해 전혀 다른 결과를 내기도 했고 공정 난도와 수율, 납기와 비용 문제는 기술적 우수성과 별개의 영역이었다.

연구 기반의 판단이 조직 안에서 번번이 왜곡되는 구조에 대한 피로감도 컸다. 이 대표는 “전공자들이 아닌 윗선과의 의사결정 구조에 한계를 느끼고는 했다”며 “공감대가 있는 실무자들끼리 뭉쳐 자유롭게 회사를 운영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결국 그는 13년의 직장 생활을 멈추고 2006년 3월 자본금 4억 4000만 원을 들고 직원 3명과 함께 켐트로스를 창업했다. 연구소 시절 직접 공장을 임차해 다니며 얻은 경험과 네트워크는 그가 가까운 시장부터 공략하도록 이끌었다. 신약처럼 긴 개발·허가 과정이 필요한 영역보다 중간체·복제약 원료 같이 시장성과 공급 구조가 분명한 분야에서부터 사업 모델을 짜기 시작한 것도 같은 이유다.

켐트로스는 창업 첫해 6억 원의 매출을 올린 후 2008년에는 24억 원까지 성장하면서 숨통이 트였다. 임대 공장만으로는 생산 안정성 확보에 어려움을 겪게 되면서 본격적으로 공장 인수를 추진하게 됐지만 이 시점에 리먼브러더스 사태가 터졌다. 잔금을 지급하기 직전에 금융기관의 심의가 단숨에 중단되면서 모든 유동성이 막혔다. 그는 “작은 기업을 외부 변수가 얼마나 빠르게 흔드는지 정확히 알게 됐다”며 “자금 투자를 비롯한 회사 운영을 보수적 관점으로 전환하게 된 계기”라고 설명했다.

이동훈 코스닥협회장 겸 켐트로스 대표가 3일 서울 여의도 코스닥협회 사옥에서 서울경제신문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오승현 기자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뒤이어 발생한 폭발 사고는 그의 경영 원칙을 굳히게 된 결정적 계기가 됐다. 연구소 이전 과정에서 폐기물을 모아둔 드럼통이 폭발해 직원들이 부상을 입고 실험실 일부가 전소됐으며 한 명은 폭발의 충격으로 4층에서 떨어져 중상을 입었다. 작은 징후를 무시하면 결국 큰 사고로 이어진다는 ‘하인리히 법칙’과 산업 안전의 기본 원칙이 체화된 순간이었다. 이 대표는 이후 안전관리 체계 구축과 사고 예방의 필요성을 절감하며 회사의 모든 역량을 집중했다. ‘안전은 최고경영자(CEO)의 책무’라는 원칙은 지금도 켐트로스의 영속적 원칙으로 남아 있다.

이 대표는 연구자로 몸에 밴 사고방식이 지금도 조직 운영에 깊이 스며 있다고 했다. 그는 “문제에 직면했을 때 현상을 분류하고 가능한 원인을 가설로 세운 뒤 데이터를 통해 검증하는 방식이 습관처럼 남았다”고 말했다.

올 2월부터 제14대 코스닥협회장을 맡은 후로도 같은 철학을 유지하고 있다. 협회 활동을 통해 얻는 제도·시장 흐름에 대한 시야와 켐트로스를 운영하며 체득한 현장 경험을 서로 연결해 조직 운영의 실효성을 높이는 방식이다. 이 대표는 “켐트로스를 운영하면서 기술 기업이 겪는 어려움과 제도적 보완점을 피부로 느꼈다”며 “코스닥협회장으로서 그러한 목소리를 관련 부서에 직접 전달하고 개선으로 이어지게 할 수 있다는 것은 매우 큰 보람”이라고 밝혔다.

그는 올해 들어 또 다른 기술과 시장의 간극을 마주하고 있다. 기술 경쟁력은 뛰어나지만 시장·투자자와 소통하는 방식이 익숙하지 않아 제 가치를 제대로 평가받지 못하는 기업들을 수없이 접하기 때문이다. 많은 혁신기업이 기술 중심 설명에 머물러 시장과 자본의 언어로 자신을 표현하지 못하는 현실 속에서 그는 “기술을 만든 사람이 직접 시장과 소통하고, 투자자에게 왜 이 기술이 필요한지를 이야기할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기술의 가치는 실험실에서가 아니라 시장에서, 그리고 기술이 해결하려는 문제에 대한 스토리와 사업 모델을 통해 증명된다는 믿음이다.

이동훈 코스닥협회장 겸 켐트로스 대표가 3일 서울 여의도 코스닥협회 사옥에서 서울경제신문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오승현 기자


조직의 수장으로서 가장 깊게 체득한 원칙으로 신뢰와 설명력을 꼽았다. 그는 “신뢰는 시간의 함수”라며 “쌓아 올리는 데는 긴 시간이 걸리지만 무너지는 것은 한순간”이라고 말했다. 연구와 생산·영업 등 조직 구성원이 각기 다른 전문성과 배경을 갖고 있는 만큼 그는 리더의 역할을 설계자로 인식했다. 연구자로서 몸에 밴 ‘왜’라는 질문과 가설 검증 방식은 조직 운영에서도 그대로 이어지고 있으며 이를 통해 회사의 문제를 단순 현상보다 구조로 접근하는 문화를 만들었다고 강조했다.

마지막으로 그는 위기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고 방향성을 제시하는 ‘나침반’ 같은 리더가 되고 싶다는 점을 강조했다. 이 대표는 “켐트로스에서는 산업을 가장 잘 이해한 경영자로, 코스닥협회에서는 시장을 가장 잘 아는 협회장이 되고 싶다”며 “협회장의 경우 명예직에 가깝고 임기도 2년으로 짧지만 업계의 스피커 역할을 제대로 하고 싶다는 욕심이 생긴다”고 했다. 그러면서 “단순히 제도를 비판하거나 기업을 대변하는 역할에 그치지 않고 실질적인 변화와 연결을 만들어낸다면 그보다 큰 보람은 없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He is…

△1963년생 △1987년 경희대 화학과 졸업 △1989년 한국과학기술원(KAIST) 화학과 석사 △1995년 KAIST 화학과 박사 △1995년 한솔기술원 입사 △2003년 한솔케미칼 생명과학연구소장 △2006년 켐트로스 창업 △2024년 코스닥협회 수석부회장 △2025년~ 코스닥협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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