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연금이 사모펀드(PEF)운용사 MBK파트너스의 블라인드 펀드(투자처를 정하지 않고 출자 받는 대형 펀드)로 고려아연(010130)에 투자하지 않도록 방침을 정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국내 기관투자가 사이에서 파장이 일고 있다. 국민연금과 함께 출자하는 다른 국내 기관투자가 사이에서는 아예 MBK파트너스 스스로 펀드 출자자 지위를 반납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고려아연 분쟁이 장기전 양상으로 흘러가는 상황에서 홈플러스의 유탄을 맞은 MBK의 핵심 자금줄이 막힐 수 있는 상황인 셈이다.
17일 투자은행(IB) 업계에 따르면 국민연금은 최근 MBK가 조성하는 6호 블라인드 펀드에 3000억 원의 출자를 확정하면서 투자 원칙을 정하는 정관 외에 사이드레터(부속서신)를 통해 적대적 인수합병(M&A) 분쟁 거래에 대한 출자금 투입 금지를 요구했다. 국민연금은 “MBK의 적대적 M&A 투자 전략은 국민연금의 운용 방향에 부합하지 않기 때문에 해당 투자건에는 참여하지 않는다”면서 “앞으로 기금이 투자하게 될 (다른) PEF의 계약 정관에 반영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특히 적대적 M&A의 의미를 현 이사회와 반대되는 주장을 요구하는 투자자로 해석해야 한다는 게 국민연금 내부의 기류다. MBK는 고려아연의 1대 주주인 영풍(000670)과 손잡았으므로 적대적 M&A가 아니라고 주장해왔지만 국민연금이 이를 일축한 것이다.
국민연금은 지난해 7월 MBK를 출자사로 선정했지만 고려아연 관련 적대적 M&A 투자 금지 규정을 담기 위해 지난달까지 장기간 협상을 이어온 것으로 파악됐다. 업계 관계자는 “MBK 입장에서 국민연금의 3000억 원 출자금은 포기할 수 없는 금액이지만 해외 기관투자가와 형평성을 맞추기 위해 고심을 거듭했다”면서 “정관이 아닌 개별 기관투자가의 요구를 담는 사이드레터를 통해 사실상 고려아연에 국민연금 돈을 쓰지 않기로 정한 것”이라고 말했다.
통상적으로 블라인드 펀드의 정관은 운용사에 투자 전반을 맡기는 취지에 맞게 법률을 위반하지 않는 선에서 펀드가 자율적으로 투자하도록 규정하고 모든 기관투자가가 동일한 정관을 적용한다. MBK는 이미 고려아연 분쟁 과정에서 대출을 통해 자금을 집행한 뒤 6호 블라인드 펀드로 대출을 갚을 계획이었지만 이 같은 전략에 국민연금의 출자금은 쓸 수 없게 됐다. 업계에서는 국민연금만 고려아연 투자에서 제외할 수 없는 만큼 6호 블라인드 펀드로는 고려아연에 투입할 수 없게 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MBK는 7조 원 규모 블라인드 펀드의 출자자를 순차적으로 확정하고 정관을 개정하고 있는데 국민연금의 방침이 전해지면서 공무원연금과 방사성폐기물관리기금도 고심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한 국내 기관투자가는 “고려아연이 상장사이기 때문에 매년 주가 변동이 기록되는 점도 장기 대체투자자 입장에서는 고민”이라면서 “국민연금 상황을 주시하면서 출자 확정을 미루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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