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투자자는 물론 국민연금 등 기관투자가를 솔깃하게 한 해외투자자 공모펀드에서 투자금 전액 손실까지 나오고 있다. 만기 때는 시장 상황이 좋아질 것이라며 투자자를 유혹했던 국내 증권사와 자산운용사들이 무색할 정도로 투자금 절반을 잃은 채 청산한 펀드 규모도 1조 원이 넘는다. 앞으로도 오피스 공실률이 회복되지 않을 가능성이 높은 만큼 현지 자산에 대한 투자 심의 강화, 손실 시 공동 투자자들이 추가 투자 여부를 빠르게 결정하는 등의 장기 투자 전략을 갖춰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14일 투자은행(IB) 업계에 따르면 미래에셋증권이 2018년 펀드를 통해 투자한 프랑스 마중가타워는 현재 총 3697억 원의 투자금 중 95% 이상인 3541억 원을 손실로 처리했다. 딜로이트와 악사그룹 계열사인 AXA인베스트먼트가 100% 임차하고 있어서 7% 이상 수익이 기대됐고 투자 당시 건물 가치만 1조 원이 넘었으나 사실상 전액을 날린 것이다. 마중가타워는 외부 금융기관에 재매각(셀다운)되지 않으면서 미래에셋계열사 다수가 투자 중이다.
개인투자자가 다수인 해외 부동산 공모펀드 중 또 다른 대표 손실 사례는 수익률 -99.99%로 기한이익상실(EOD)이 발생한 이지스자산운용의 이지스글로벌부동산투자신탁229호(트리아논펀드)다. 공모펀드 최초 설정 규모는 1862억 원이고 사모펀드까지 합치면 국내에서 투자금만 3700억 원이 들어갔다. 하나대체투자자산운용이 2018년 651억 원 규모로 설정한 하나대체 88호의 경우 미국 실리콘밸리 이베이 본사에 투자했던 펀드인데 지난해 11월 기준 평가액 284억 원으로 손실률 57.4%다.
국내 자산운용사가 해외 부동산에 투자하기 위해 조성해 청산까지 완료한 공모펀드 11개 중 5개는 원금 손실이 났다. 한국투자리얼에셋운용이 2023년 청산한 ‘한투벨기에코어오피스2호(손실률 100.0%)’를 비롯해 △이화자산운용 ‘이화일반사모부동산투자신탁30호(85.4%)’ △미래에셋자산운용 ‘미래에셋맵스 프런티어 브라질 월지급식 부동산 투자신탁 1호(85.0%)’ 등은 원금 대부분을 잃었다.
해외 부동산 펀드 다수는 환헤지(리스크 분산) 실패와 불리하게 짜인 대출 구조로 큰 손실을 입었다. 미래에셋자산운용은 공모펀드 자금 800억 원에 사모펀드 조달금을 더해 브라질 상파울루에 있는 호샤베라타워 2개 동을 5400억 원에 매입했는데 청산 시기 현지 통화인 헤알화가 폭락하며 대규모 손실을 입었다. 특히 미래에셋은 계열사가 투자한 사모펀드에만 헤지 구조를 마련하는 바람에 상대적으로 손실이 컸던 공모펀드 투자자들이 반발했고 이 때문에 미래에셋이 원금 일부를 보전해 주면서 투자 책임 원칙을 훼손했다는 비판을 받았다.
국민연금 등 대형 기관투자가들도 최근 들어 손실을 피하지 못하는 상황이다. 국민연금은 미국 쇼핑몰에 투자한 해외 부동산 펀드에서 2019~2020년 기한이익상실로 2412억 원의 손실을 입은 것으로 파악됐다. 교직원공제회 역시 인도네시아에 워버그핀커스를 통해 투자한 부동산 펀드에서 손실이 발생했다. 국내 공제회 등이 투자한 프랑스 에크호빌딩 투자 펀드도 총 3000억 원 가까운 손실을 눈앞에 두고 있다.
부동산 시행 업계 관계자는 “상업용 건물 매입은 시장 상황은 물론 입지 규제, 개발 잠재력, 임차인 안정성 등을 두루 따져 진행해야 하는데 해외 투자에서는 이런 전문성을 갖추기 어렵다”며 “이런 상황에서 환 리스크가 발생하고 대출 구조도 불리하게 설계돼 있다 보니 대규모 손실이 발생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국내 투자 업계가 간과한 것은 국내와 다른 해외 선순위자의 우선권이다. 국내의 경우 임대료가 일부 밀리더라도 기다려주는 관행이 있지만 해외는 임대료가 미납되거나 주요 임차인이 변경되면 선순위 투자자가 바로 담보권을 실행해 해당 건물을 헐값에 매각한다. 주로 중순위자로 투자한 국내 투자자들은 선순위자가 매각 권한이 있다는 사실조차 모르는 경우도 있었다.
해외 선순위 투자자들은 부실이 발생하면 짧은 기한만 주고 중순위자가 추가 자금을 투입해 지위를 유지할지 결정하길 요구한다. 프랑스 라데팡스에 투자했지만 부실이 발생한 에크호빌딩의 경우도 국내 기관투자가들이 추가 투자를 위한 의사 결정을 미루는 실정이다.
근본적으로 국내 투자 업계는 잦은 인력 교체로 책임감이 결여되고 장기 투자를 하지 않기 때문에 손실이 발생했을 때 추가 투자로 회복을 기다리는 투자 전략이 어렵다. 게다가 코로나 이후 20%로 올라온 오피스 공실률은 앞으로도 회복되지 않을 것으로 보여 더욱 보수적인 투자 기조가 강하다. 무디스가 발표한 유형별 공실률을 보면 오피스는 20.1%로 산업 시설(6.7%)이나 아파트(5.8%)에 비해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미국발 관세 위협, 추가 물가 상승 우려로 좀처럼 금리 인하가 어려운 상황”이라며 “경기 침체 우려도 커지는 단계인 만큼 단기간 내 해외 상업용 부동산 가격이 반등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내다봤다.
문제를 인지한 금융감독원은 부동산 등 대체투자 펀드를 외부 전문 기관이 주기적으로 평가하고 투자심의 과정에서 최고업무책임자(COO)가 재검토할 수 있는 권한을 확대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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