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를 넘어 동북아 최대 사모펀드(PEF) 운용사로 평가 받는 MBK파트너스가 주춤한 사이 라이벌 한앤컴퍼니(한앤코)가 존재감을 키우고 있다. MBK는 고려아연(010130) 경영권 분쟁, 홈플러스 사태를 수습하며 신규 투자를 잠시 멈춰 세운 모양새지만, 한앤코는 올 들어 두 건의 신규 M&A(인수·합병)를 성사시킨데 이어 추가 빅딜도 예고하면서다.
14일 투자은행(IB) 업계에 따르면 한앤코는 SK(034730)실트론 경영권 인수를 위한 협상을 진행하고 있다. SK실트론의 기업가치가 최대 5조 원에 달할 수 있다는 평가 속 SK와 한앤코가 또다시 거래를 성사시킬지 관심이 쏠린다.
①한앤코, SK실트론 인수 협상…'친재벌' 평가도
한앤코는 올 들어서만 SK그룹과 두 건의 M&A 거래를 마무리지었다. 올 초 2조 6000억 원을 투입해 SK스페셜티를 인수했고 이달 초 SK엔펄스의 CMP패드 사업부를 3346억 원에 인수 완료했다. 한앤코는 지금까지 SK그룹과 총 9개 딜을 합작하며 끈끈한 파트너십을 증명하고 있다.
여기에 더해 최근엔 SK의 자회사이자 반도체 핵심 원재료인 실리콘웨이퍼 제조사 SK실트론의 인수를 검토하고 있다. 시장은 SK그룹과 한앤코의 관계를 주목하며 실트론 역시 한앤코의 인수가 유력하다고 보고 있다.
한앤코는 주요 포트폴리오 기업의 매각 과정에서도 재계와 꾸준히 호흡을 맞춰 왔다. 올 초 한온시스템 경영권 지분 약 23%를 한국타이어앤테크놀로지에 매각하고 21.63% 소수지분 투자자로 남았다. 최근 SK해운을 매각하기 위해 국내 최대 선사 HMM과 협상을 진행중이다. IB업계에선 최근 MBK와의 색깔 차이를 지목하며 한앤코를 친재벌 PEF로 평가하기도 한다.
②MBK, 홈플 사태 후 CJ제당·HPSP(403870) 인수 주춤
MBK는 스페셜시츄에이션 펀드를 활용해 2023년 한국앤컴퍼니(000240) 공개매수를 단행, 기존 최대주주 및 경영진과 협력 없이 경영권 인수를 시도하는 첫 경험을 쌓았다. 지난해엔 고려아연을 상대로 다시 한번 공개매수 경영권 인수에 나서며 최윤범 회장 측과 8개월째 분쟁을 이어가고 있다.
전문가들은 MBK를 단순히 적대적 M&A 기반 행동주의 펀드로 정의하지는 않는다. 이번 고려아연 경영권 분쟁에서도 MBK는 이 회사 최대주주인 영풍 장씨 일가와 협력했다. 2대주주이자 현 경영진 측인 최 회장과 분쟁을 벌인다는 점이 특히 부각됐지만, 경영 정상화나 이사회 운영 투명화 등에 방점을 두고 기업가치를 올리는 긍정적 펀드로 보는 시선도 많았다.
다만 이 같은 MBK의 방식이 재계의 심기를 불편하게 했다는 건 사실에 가깝다. 이 때문에 MBK 펀드에 출자하는 국내 기관투자가(LP)들의 고민도 커지고 있다. 한국에서 수십년 간 단단한 조직력, 넓은 네트워크를 구축해 온 재계에 맞서 MBK가 반대편에 선 모양새가 연출 되면서다.
MBK의 새 펀드에 출자를 약속한 국민연금은 최근 홈플러스 사태 후 내부에 기류 변화가 감지되고 있다. 이 같은 상황이 영향을 미치면서 MBK가 인수를 검토해온 CJ제일제당(097950) 바이오사업부, HPSP 등 조 단위 신규 투자가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다.
③김병주·한상원, 공통점 많지만 색깔차도 뚜렷
MBK와 한앤코는 △한국계 미국인이 창업 △미국·한국 최고 대학 출신 고스펙자들로 구성 △해외 자금 유치 및 한국 기업에 주로 투자 등 공통점이 많다. 다만 최근 들어서는 두 회사의 노선이 갈리고 있다는 평가가 많아졌다.
MBK 창업주인 김병주 회장은 하버포드 대학과 하버드 MBA를 졸업하고 골드만삭스, 칼라일 등을 거쳤다. 포항제철 창업 공신인 고(故) 박태준 포스코 회장의 사위다. 기업을 승계하지 않은 박 회장을 평소 존경하는 기업 경영자로 꼽는다고 한다.
오너 중심의 재계가 향후 투명한 이사회 중심으로 변해야 한국 시장 전체가 레벨업 할 수 있다는 신념도 강한 것으로 전해진다. 고려아연이나 한국앤컴퍼니처럼 적대적 M&A로 평가 받는 딜을 과감하게 실행한 것은 그와 비슷한 결을 가진 임직원들이 뭉친 결과라는 해석이다.
한앤코를 창업한 한상원 사장은 예일대와 하버드 MBA를 졸업했다. 또 모건스탠리PE 한국 대표와 아시아 최고투자책임자(CIO)를 지냈다. 그는 방상훈 조선일보 회장의 사위다. 한 사장은 일에 철저히 매진하며 회사나 펀드의 이익이 되는 방향을 최우선 순위로 여긴다는 주변 평가가 많다.
재계 다방면 네트워크도 강점이다. 한국 재계의 오너가들도 한 사장을 재벌로 인정하는 기류가 강하다고 한다.
IB 업계 관계자는 “사모펀드 산업이 급성장하고 대기업 구조조정의 핵심 파트너가 되며 다양한 색깔을 가진 운용사들도 탄생하는 것”이라며 “시대와 상황에 맞는 M&A 딜이 새롭게 만들어지는 것으로 누가 맞다 틀리다를 논할 수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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