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도균 프라이머 대표는 한때 “돈을 다 쓰고 죽겠다”고 공공연히 말하고 다녔다. 2008년 연이은 창업 회사 매각으로 1000억 원대 자산가가 된 뒤였다. 여유가 생기다 보니 나름의 사치도 하고 베푸는 일도 늘렸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며 현실감 없는 소리를 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는 “돈은 줄지 않는데 체계적인 시스템 없이 남기면 오히려 사회에 해악(害惡)이 된다는 걸 알게 됐다”고 말했다.
실제 이러한 고민은 최근 몇 년간 그의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평소에도 깨달음이 오면 1~2년간 숙고를 하고 답을 찾는 편이다. 단순한 기부가 아니라 창업자의 철학이 담긴 설계와 오랜 시간 작동할 수 있는 구조를 고민했다. 선의를 가진 기부에 그치지 않고 돈이 어떻게 쓰일지 설계까지 해야 한다는 책임을 자각한 것이다. 그가 말하는 사회 환원의 핵심은 ‘지속 가능성’에 있다. 많은 이들이 좋은 취지로 사회 환원을 하지만 지속 가능한 설계 없이는 쉽게 오염된다. 고(故) 원흥묵 씨가 설립한 재단법인 청암학원을 고 김문기 전 상지대 총장이 장악하면서 오랫동안 내홍을 겪은 게 대표적이다. 창업자 유일한 박사의 ‘소유와 경영 분리 정신’을 잊고 회장직 신설로 논란을 빚은 유한양행의 사례도 눈여겨봤다.
특히 경남 진주에서 약방을 하며 장학 사업을 펼친 김장하 선생의 삶을 다룬 다큐멘터리 ‘어른 김장하’를 보다가 “돈은 똥과 같다. 모아두면 구린내가 나고 흩어버리면 거름이 된다”는 선생의 말을 들을 때 권 대표는 전율이 왔다고 했다. 쌓이면 악취가 흐르지만 흩어버리면 새로운 생명의 마중물이 된다는 단순한 진리가 그에게 깊게 남았다.
우리 사회에서 환원에만 집중할 것이 아니라 어떤 설계와 구조를 만들지도 함께 고민해야 한다는 게 권 대표의 생각이다. ‘돈을 쓴다’는 개념을 넘어 ‘돈이 작동하게 만든다’는 관점으로의 전환이 필요하다는 설명이다. 주변의 자산가들을 보면 충동적으로 기부하거나 피상적으로 사회적 환원에 대한 이야기를 입에 담지만 한 단계 진지한 고민이 필요하다는 것. 재단에 기부하는 방식 역시 사회를 위해 잘 쓰여지고 있는지 계속해서 살피지 않는 것 또한 책임 자체를 회피하는 것이라는 게 그의 생각이다. 그는 “사회 환원은 단순한 선의만으로는 안 되고 기부는 때때로 가장 게으른 방식이 될 수 있다”며 “지속 가능하도록 설계된 구조가 사회를 건강하게 만든다”고 거듭 강조했다. 돈을 남길 때도 실행하는 사람이 가장 중요하지만 한 개인의 윤리성에 의존하기보다는 사람의 약점을 보완하는 지배구조가 아우러져야 한다는 것이다.
인터뷰 때도 워런 버핏의 은퇴와 빌 게이츠의 재단 사업이 주요 화제에 올랐다. 그는 “버핏처럼 이 사회에 긍정적인 영향력을 가진 분의 존재 자체가 일종의 ‘효모’와 같다”며 “더 오래 현직에 계셨다면 좋았을 텐데 아쉬움이 남는다”고 말했다. 인터뷰를 한 날 게이츠 이사장은 예정했던 사회 환원을 앞당기고 2045년에는 재단을 영구 폐쇄하겠다는 결정을 발표했다. 자신의 살아생전에 사회적인 책임을 다하고 재단을 폐쇄하겠다는 것이다. 권 대표가 보기에는 지속 가능한 구조에 대한 고민의 결과로 읽혔다.
그가 창업 초기 기업에 투자하고 교육을 맡은 것도 개개인에게 더 효과적인 영향을 줄 수 있을 거라고 봤기 때문이다. 극초기 기업 투자의 경우 처음에는 장학금을 주듯이 돈을 준다고 생각했는데 이내 생각을 바꿨다. 그는 “꼬리표 없는 돈은 사람을 쉽게 오염시킨다”며 “비즈니스적으로 투자라는 방식을 통해 성장을 돕는 것”이라는 설명이다.
권 대표는 “제 재산의 대부분이 제가 죽고 나서도 새로운 꿈으로 시도를 하는 사람에게 마중물의 역할을 하도록 지속 가능한 구조를 만들어놓고 싶다”며 “결국 좋은 사명과 윤리를 가진 개인과 그걸 체계화할 수 있는 지배구조가 어우러지면 좀 더 오래가지 않을까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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