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말 국내 최대 아트페어인 ‘프리즈 서울’과 ‘키아프 서울’에 다녀왔다. 지난해 처음 가보고 많은 여운이 있어서 올해는 일찍부터 일정을 빼놓았다. 이번에도 7만 명 이상이 이 행사를 찾았다고 하며 세계 최대 미술 축제인 아트바젤의 규모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국내에서도 이런 규모의 전시회가 계속 열린다는 사실은 반가운 일이다.
스페인 북부 작은 도시인 빌바오는 구겐하임미술관을 유치한 후 해마다 수백만 명의 여행객이 찾는다고 한다. 일본의 작은 섬인 나오시마에도 많은 국내외 관광객이 미술관을 찾아 방문한다. 미술만이 아니다. 전 세계 주요 도시에서 열리는 클래식 축제는 클래식 애호가뿐 아니라 관광객들의 참여로 인해 현지인에게 경제적·사회적 효과를 가져다준다.
개인적으로 가장 부러운 행사는 7월 중순부터 두 달간 영국 전역에서 열리는 ‘BBC프롬스’다. 전 세계에서 초대된 오케스트라 등 100여 개 예술 단체의 클래식 공연이 런던의 로열앨버트홀을 중심으로 다양한 공연장에서 펼쳐진다. 영국 유학 시절 BBC프롬스의 야외 공연을 수만 명의 관중 속에서 보면서 이 나라의 저력과 시민사회의 연대감을 느낄 수 있었다. 오스트리아 잘츠부르크 축제에는 거주 인구의 2배인 약 30만 명이 몰리고 이탈리아와 독일의 주요 지역 음악 축제에도 관광객의 발길이 이어진다.
국내에도 이런 노력이 많이 있다. 평창대관령음악제와 통영음악제 같은 지역 축제를 비롯해 기업이 후원한 교향악 축제 등 여러 음악 축제가 있다. 다만 한국은 문화·예술에 대한 저변이 취약하고 기업이나 지역사회의 후원도 장기적이지 못하다. 이런 공연을 함께 즐기고 소비할 방문객 규모도 작아 성공적인 축제로 지속되기 어렵다.
문화·예술의 힘은 생각보다 강하다. 사람들의 집객 효과에서 파생되는 경제적 가치는 말할 것도 없고 사회를 통합시키고 개인의 정서적 안정을 도와주며 또 사회윤리와 질서의 기반을 제공하는 등의 사회적 가치는 수치로 환산하기 힘들다. 문화·예술이 강한 나라들이 선진국 지위를 오래 유지하는 것도 주의 깊게 볼 일이다.
정부와 지방자치단체들은 문화·예술에 많은 돈을 쓰고 있다. 다만 큰 규모의 멋진 공연장을 새로 만드는 것보다 콘텐츠와 인력 양성, 기부 문화 확산에 투자하는 것이 더 절실해 보인다. 예술의전당에는 대다수가 차를 몰고 가지만 뉴욕 링컨센터나 런던 코번트가든에는 대부분의 관람객이 지하철과 같은 대중교통으로 간다. 그래도 콘텐츠가 좋으면 사람은 몰린다.
개인적으로 몇몇 예술 단체를 후원하고 있는데 대기업들의 후원이 줄어든 느낌은 아쉽다. 프랑스 파리오페라단은 롤렉스·EY·샤넬 등이 후원하고 있고 뉴욕 메트오페라는 블룸버그를 비롯한 주요 금융사와 기업들의 후원을 받고 있다.
기업과 개인의 후원 문화가 확산되려면 문화·예술을 후원하는 기업이 더 많아지고 이러한 활동이 사회적으로 존중받는 분위기가 돼야 한다. 제도적인 지원도 필요한데 특히 개인 기부금은 현재 세액공제 방식보다 과거처럼 소득공제로 변경하는 것이 더 많은 후원을 이끌어낼 수 있지 않나 생각한다.
문화·예술의 수준은 그 사회의 힘과 성숙함을 보여준다. 최근 K팝을 바탕으로 한 K엔터가 전 세계에 한국 콘텐츠를 알리고 관광산업과 경제에 긍정적인 효과를 주는 것처럼 K클래식 역시 조성진·임윤찬에 이어 세계적인 지명도를 가진 더 많은 공연 활동이 펼쳐지기를 바란다. 문화·예술에 더 많은 관심과 투자는 경제와 사회에 분명 장기적이고 긍정적인 파급 효과를 창출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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