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발 ‘조 단위 빅딜’이 속속 진행되며 인수합병(M&A) 시장이 완연한 회복세를 보이고 있다. SK(034730)와 삼성·LG(003550)·롯데 등의 대기업들은 비핵심 자산 카브아웃(사업부 분리 매각)을 통해 효율화를 추진하고 있어 대규모 빅딜이 올해 이어질 것으로 전망된다.
30일 서울경제신문 시그널이 집계한 리그테이블(50억 원 이상 경영권 인수 기준)에 따르면 올 1분기 자금 납입을 완료한 거래 금액은 13조 256억 원으로 전년 동기(8조 994억 원) 대비 60.8% 증가했다. 지난해 ‘빅딜’ 실종으로 움츠러들었던 거래 규모가 회복세를 나타낸 것이다. 거래 건수는 94건에서 105건으로 소폭 늘었다.
주식매매계약(SPA) 체결 기준으로도 올 1분기 거래 금액은 5조 1093억 원(25건)으로, 전년 동기의 1조 9681억 원(25건)에 비해 대폭 증가했다.
거래가 완료된 딜 중 1조 원이 넘는 M&A는 총 4건이었다. 한국타이어앤테크놀로지(161390)가 한앤컴퍼니 지분 23% 매입과 유상증자로 발행한 신주 취득으로 한온시스템(018880) 지분율을 54.77%로 높였다. 글로벌 사모펀드(PEF) 운용사 어피니티에쿼티파트너스는 롯데렌탈(089860) 지분 56.2%를 1조 7848억 원에 사들여 경영권을 확보했다.
중국 업체로의 매각도 눈에 띈다. 삼성SDI(006400)는 편광필름 사업부를 중국 우시헝신광전재료유한공사에 1조 1210억 원에 매각했다. LG화학(051910)은 편광판 및 편광판 소재 사업부를 각각 중국 샨진옵토일렉트로닉스와 허페이신메이머티리얼즈에 팔았다. 매각 대금은 총 1조 982억 원이다.
올해 M&A 시장에서는 대기업의 보수적 투자 기조 속에 사모펀드가 적극적인 역할을 할 것으로 전망된다. 한앤코가 SK스페셜티를 2조 7008억 원에 인수한 딜은 2분기 중 거래가 완료될 것으로 예상된다. 또 CJ제일제당(097950)이 5조 원 규모의 그린바이오 사업부 매각을, SK에코플랜트가 폐기물 자회사 리뉴원과 리뉴어스, 해상풍력 자회사 오션플랜트의 매각을 추진 중이다.
투자은행(IB) 업계 관계자는 “올해도 사모펀드의 대기업 비핵심 사업 인수가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며 “다만 홈플러스 상황으로 인해 사모펀드에 대한 부정적 여론이 형성되고 있고 규제 강화가 우려된다는 점이 관건”이라고 말했다.
2025년 1분기 리그테이블에 따르면 인수와 매각 양 측면에서 국내 PEF 한앤코가 단연 눈에 띈다. 한앤코는 현재 진행 중인 거래에서 SK스페셜티 지분 85%를 2조 7008억 원에 인수하며 최대 거래 투자자가 됐고 한온시스템은 1조 8277억 원에 한국타이어앤테크놀로지에 팔았다. SK스페셜티는 SK그룹이 투자에서 운영으로 중심을 옮기며 나온 매물이었고 한온시스템은 과거 한라그룹에서 한앤코에 매각될 당시부터 인수를 점찍은 한국타이어에 넘긴 사례다. 출자금 기준 국내 최대 PEF인 한앤컴퍼니의 자금력이 있었기에 가능한 거래였다. 다만 한온시스템은 한국타이어로 넘어가자마자 27년 만에 당기손익 적자를 기록했고 늘어난 차입금과 배당금이 원인으로 지목된 만큼 ‘PEF 경영’에 대한 평가는 엇갈린다.
국내 대기업 사업 재편의 또 다른 파트너는 중국이다. 삼성SDI의 편광필름사업부 매각, LG화학 편광판과 소재사업부 매각은 각각 1조 원이 넘는 대규모였지만 중국의 동종 업계 기업이 인수했다. 중국과 주변 국가의 중화권 자본은 한국 투자로 미국의 관세 장벽을 피하려 하고 국내 석유화학·유통 등 자금줄이 말라버린 업계 역시 이들을 반기면서 당분간 이 같은 투자는 이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국내 대기업 다수는 매각에 몰두한 반면 한화그룹은 빅딜 2건을 한꺼번에 소화하며 그룹 기준 최대 투자자가 됐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와 한화오션은 싱가포르 부유식해양설비 제조사 다이나맥홀딩스를 8624억 원에 인수했다. 한화오션은 미국에 자산이 있는 호주 오스탈조선소 인수도 지난해 무산된 뒤 최근 재추진하고 있다. 또 한화호텔앤리조트는 아워홈 경영권을 8694억 원에 인수했고 남은 대주주의 지분까지 사들일 계획이다.
K뷰티를 향한 국내외 투자가 이어진 것도 두드러진 특징이다. 글로벌 뷰티 기업 로레알이 ‘닥터지’로 알려진 고운세상코스메틱을 2550억 원에 인수하며 6년 만에 국내 시장을 두드렸고 PEF 케이엘앤파트너스는 마녀공장 경영권을 1900억 원에 인수했다. 글랜우드크레딧은 실리콘투에 1440억 원을 투자했다.
2분기에는 1분기보다 큰 거래가 기다리고 있다. 최대 6조 원이 예상되는 CJ제일제당 그린사업부를 MBK가 인수할 수 있을지 또는 중국 기업을 새 주인으로 맞을지 결론을 앞두고 있다. 5조 원의 DIG에어가스도 6월께 인수자를 확정할 계획이다. SK그룹의 남은 구조조정 매물인 SK에코플랜트의 환경 사업부도 2조 원 안팎에서 조만간 인수자를 결정할 것으로 보인다. 초기 단계를 밟고 있는 클래시스 역시 3조 원의 몸값을 기대하고 있다. 이들 매물 대부분이 PEF가 관심을 갖고 있는 만큼 여전히 거래 주도권은 기업보다 PEF가 쥐고 있되 국내보다 해외 PEF가 활개 치는 시장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대형 거래를 성사시키기 위해 뛰는 자문사 중에는 모건스탠리가 존재감을 과시했다. 총 5조 2519억 원의 거래에서 금융 자문을 맡으면서 2위권 자문사와 2배 이상 격차를 벌렸다. 한온시스템에서는 매각과 인수 자문을 동시에 맡았고 삼성SDI 편광필름사업부 매각 자문과 MBK 측에서 일본 후지쓰인터커넥트테크놀로지스 인수를 도왔다. 업계 1세대인 조상욱 한국대표와 새로 합류한 김세원 전무가 M&A뿐만 아니라 기업공개(IPO)에도 적극적으로 뛰어들고 있다. 뒤이어 삼정·삼일회계법인, HSBC, 골드만삭스가 이름을 올렸다.
회계 자문은 한온시스템 매각에 참여한 삼일(자문 규모, 5조 9356억 원)과 LG화학 편광판사업부 매각을 도운 삼정(5조 6869억 원)이 박빙의 차이로 1·2위를 차지했고 나머지 주자와 격차가 컸다. 법률 자문은 김앤장 법률사무소가 부동의 1위를 기록한 가운데 세종·광장·태평양·율촌이 뒤를 이었다. 주요 거래 중에는 구대훈 광장 변호사가 한화호텔앤리조트의 아워홈 인수를 법률 조언했고 장재영 세종 변호사는 PEF 케이스톤파트너스의 가영세라믹스·성장세라믹스 인수를 자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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