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초 효과’를 지나서도 회사채 발행 시장의 강세가 이어지고 있다. 경제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선제적으로 자금을 확보하려는 움직임이 활발해졌고 금리 인하 기조 속 기관은 미리 고금리 채권을 사둬 금리 인하 시기 시세차익을 거두려 하기 때문이다. 회사채 발행 시장의 수요와 공급이 모두 늘어날 요인이 형성된 가운데 채권 발행 중개자인 증권사 간 영업 경쟁도 치열해지는 양상이어서 4월 회사채 발행 규모는 많게는 6조 5000억 원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
31일 금융투자 업계에 따르면 주요 기업들은 4월에 최대 6조 5200억 원의 회사채 수요예측 및 발행을 앞두고 있다. 하림지주는 4월 2일 1.5년물 700억 원과 2년물 500억 원에 대한 수요예측을 실시해 9일 최대 2000억 원까지 증액 발행하는 방안을 검토한다. 아워홈 인수를 시도하는 한화호텔앤드리조트는 11일 최대 1000억 원의 채권 발행을 앞두고 있고 CJ제일제당은 16일 많게는 6000억 원의 회사채를 시장에 내놓는다. 이외에도 CJ대한통운(최대 4000억 원)·호텔신라(4000억 원)·롯데쇼핑(4000억 원) 등의 회사채 발행 시장 출격이 예정됐다.
이들 상당수는 기존 채무를 차환하는 것이 아닌 운영자금을 사전에 확보하기 위한 차원의 채권 발행인 것으로 파악된다. CJ제일제당이 기존 발행한 채권 중 만기가 가장 빠른 1250억 원 규모 ‘CJ제일제당 29’는 올 10월이 만기다. 예정대로 4월 7일 수요예측에 나서 16일 3000억~6000억 원 규모의 신규 채권을 발행하면 6개월 뒤 상환해야 하는 금액을 크게 웃도는 자금을 확보하게 된다. 롯데쇼핑도 6월 만기가 도래하는 1400억 원 규모 ‘롯데쇼핑 66-3’ 외에는 상반기 갚아야 하는 채권이 없다.
금융투자 업계 관계자는 “회사채로 금융권 대출금을 갚을 수도 있지만 대부분은 운전자금 목적으로 신규 발행에 나서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국내외 정세나 관세 등 불확실성 이슈가 산적한 상황이어서 기업들이 선제적으로 자금 확보에 나서고 있다”고 설명했다.
신규 회사채를 매입할 수요는 견조한 상황이다. 한국은행이 2월 금융통화위원회에서 기준금리를 0.25%포인트 인하할 당시 이창용 총재는 “시장에서는 2월을 포함해 올해 2~3회 정도 인하할 가능성이 있다고 보는데 한은이 가정하고 있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며 연중 추가 금리 인하에 대한 강한 포워드가이던스(통화정책 방향을 예고하는 정책 수단)를 제시했다. 미래 금리가 낮아질 것으로 예상하면 현재 상대적으로 높은 표면(쿠폰) 금리를 보장하는 채권을 매입한 후 추후 시세차익을 거둘 수 있어 현시점 발행 채권에 대한 수요가 많아진다.
불확실성 속 국내 자금 조달 시장이 활황을 띠자 유상증자를 활용해 자금 확보에 나서는 기업도 줄을 잇고 있다. 3월 3조 6000억 원 규모의 유상증자 계획을 밝힌 한화에어로스페이스가 대표적이다. 같은 달 2조 원 규모 유상증자 계획을 밝힌 삼성SDI는 전고체 배터리 등 미래 사업에 재원 상당 부분을 투입하기로 했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올 1분기 유상증자 계획을 밝힌 기업은 71곳으로 금액이 7조 2000억 원에 달한다.
박경민 DB금융투자 연구원은 “불확실성이 해소되지 않는 상황 속 회사채 발행 시장이 강세를 보이자 기업들이 앞다퉈 자금을 확보해두려 하는 추세”라며 “금리 인하에 대한 컨센서스로 수요가 견고한 점과 증권사 간 기업 채권·주식 발행 수주 경쟁이 치열해진 점을 감안하면 자금 조달 시장 강세는 당분간 이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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