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장 기업들이 보유 중인 주식을 처분하거나 유상증자에 나서며 자금 확보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자사주 소각 의무화가 담긴 3차 상법 개정안 시행 전 자사주를 덜어내려는 움직임으로도 해석된다.
17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올해 들어 전날까지 코스피·코스닥 상장 기업의 자기주식(자사주) 처분 결정 공시 수는 388건이다. 지난해 같은 기간 기록한 272건 대비 116건(42.67%) 증가한 수치일뿐더러 최근 5년 내 최고 수치다.
자사주 처분은 기업이 보유 중이던 회사 주식을 시장에 매각하거나 제3자에게 양도해 현금을 확보하는 행위다. 주주 입장에서는 시장에 거래되는 발행 주식 수가 늘어나 자신이 보유 중인 주식 가치가 떨어지는 ‘주가 희석’ 효과가 일어나기 때문에 보통 부정적인 내용으로 해석한다. 실제 이달 들어서만 자사주를 활용해 교환사채(EB)를 발행하는 기업이 22곳에 달할 정도로 소각 대신 자금 마련을 택하고 있다. 3차 상법 시행 전 최대한 자사주를 활용하겠다는 움직임인 셈이다. 여기에 국내 증시 호조에 따른 기업 주가 상승세도 영향을 끼친 것으로 해석된다. 실적이 부진한 상장 기업이 자사주를 팔아 치우며 현금 확보에 나서고 있기 때문이다.
롯데지주(004990)는 올 6월 26일 장 마감 이후 보유 자사주 중 5%에 해당하는 524만 5461주를 롯데물산에 매각했다고 공시했다. 당시 롯데지주 주가는 연초 대비 26.61% 상승한 상황이었다. 롯데지주는 아직도 자사주를 27.5% 보유하고 있어 3차 상법 시행시 대부분 처분해야 할 상황이다.
대외 시장 환경 악화로 신용등급 하향 조정 압력이 커진 점도 자사주 처분 수요를 자극했다. 신용등급이 강등되면 기업 입장에서는 이자 비용이 늘어나 부담이 된다. 이때 회계상 자본 차감 항목인 자사주를 처분하면 자본총계 증가에 따른 부채비율 개선 효과가 나타나 신용등급 평가 시 일시적으로나마 긍정적인 영향을 끼친다.
자사주 처분과 함께 상장 기업들이 자금 조달 수단으로 애용하는 유상증자 역시 올해 급증했다. 올 들어 전날까지 유상증자 결정 공시 수는 총 530건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 기록한 425건 대비 105건(24.71%) 증가했다. 코스피 지수가 3400을 넘기 전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던 2021년 기록한 486건을 훌쩍 뛰어넘는 수치다. 특히 삼성SDI와 포스코퓨처엠 등 업황이 어려운 2차전지 기업이 조 단위 유상증자로 자금을 마련했다.
올해 자사주 취득과 소각 공시도 지난해 대비 증가했다. 이재명 정부가 ‘코리아 디스카운트(한국 증시 저평가)’ 해소를 위해 자사주 소각이나 배당 확대 같은 주주환원을 기업들에 적극적으로 요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올해 자사주 소각 결정 공시 수는 총 230건으로 지난해 124건 대비 2배 넘게 증가했다. 상장 기업이 직접 자사주를 사들이는 자사주 취득 결정 공시 역시 지난해 145건에서 올해 175건으로 30건 늘었다. 단, 실물 경제 부진 타격이 상대적으로 더 큰 코스닥 상장 기업의 경우 올해 자기주식 취득 결정 공시(67건)가 지난해(80건) 대비 오히려 감소했다.
업계 관계자는 “주주환원도 다 기업 여력이 있을 때 가능한 일”이라며 “상장 기업이 재무 부담을 가중시키면서까지 주주환원을 확대하는 행위는 주주 입장에서도 달갑지 않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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